[조맹기 논평] 트럼프의 미국과 바이든의 미국은 서로 다른 나라다.
- 자언련

- 2024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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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자를 대하는 대한민국은 냉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 대한민국의 현실진단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을 한 나라이다. 우드로 윌슨은 ‘약소국의 민족자결주의’를 이야기했다. 이승만이 아이디어가 작동했다. 그리고 이승만의 궤적에 따라 대한민국은 유엔의 감시하에 1948년 5월 10일 자유총선거가 실시되었고, 국가가 탄생했다.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밖에서 언론이 있다. 물론 그 뒤에는 미군정이 있었다.
그 일은 순조롭지 않았다. 국가주의를 방해한 국가사회주의, 민중민주주의, 공산주의 세력 때문이었다. 당시 폭력기구인 군과 경찰부터 김구는 미군정 끝날 때까지 계속 군의 힘으로 난동을 부렸다. 그러나 이승만은 유석 조병옥을 통해 경찰로서 군의 반란세력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 분위기에서 5·10 선거가 치러졌다. 남로당 세력은 여전히 득세했고, 6·25는 그들에게 기회를 줬다.
트럼프 당선자가 이야기하는 국가주의는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언론이 서로 인센티브를 갖고 경쟁하는 체제이다. 서로 ‘견제와 균형’을 취하는 것이다. 물론 그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곳은 기업이다. 미국의 마가(MAGA) 운동은 물적 토대를 다시 세우겠다는 공약을 갖고 당선이 되었다. 시장질서를 회복하겠다는 소리이다.
미국의 민주당 정권은 1991년 소련이 망하고, 클린턴 행정부는 기업인들이 세계화를 앞세워 공산권의 시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물론 기업들의 부는 엄청났다. 미국내 여론도 그들이 주도하여 조작하기에 이른다. 언론이 견재와 균형이 아니라, 선전, 선동, 진지전 구축을 했다. 그리고 시민을 세뇌하기 시작했다. 차이나는 그 사이 국가 자본으로 미국 여론을 쥐락펴락했다. 좌익 카르텔이 국가폭력을 갖는다.
국가사회주의는 밑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누르는 체제이다. 미국의 초기 국가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국가는 공정·정의를 벗어나, 폭력과 테러를 일삼는다. 그 분위기에서 이성과 합리성은 별 영양가가 없다.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질식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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