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논평] 모든 것은 전자제품이 될 것이다.
- 자언련

- 2024년 11월 7일
- 6분 분량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8월 15일 ‘자유의 공기’라는 말을 언급했다. 대한민국의 건국된 1년 후의 일이다. 이 대통령도 대한제국 때 언론활동을 한 장본인이었는데, 그 때와 비교하면 건국 1년 후 자유도는 괄목한 것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유는 원래 중세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생긴 개념이다. 앨릭 프롬은 과거와 현재가 다른 점은 농노가 아닌, 자유인이 되면서 “그 만큼 노동자가 자유 시간을 많이 늘일 수 있었다.”라고 했다. 사실 중세인들의 자유는 그 자유가 아니라, 신, 자유, 영생에서 자유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평균 수명이 짧은 중세인들은 신에 대한 충성도가 대단했다. 인간은 신에 가까이 가기 위한 훈련이다. 육체의 동굴에서 벗어나 도덕적 자유를 누린다. 그들의 최고의 행복은 신에 대한 구원의 확실성을 얻고, ‘착한 사마리아 인’, 즉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당연히 책임과 도덕률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들에게 안전보장을 위해 공동체가 필요했음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현대 자유는 1791년 ‘美연방수정헌법 1조’에서 ‘의회는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만들지 말라.’라고 말을 명문화했다. 그 때 언론은 ‘speech’이고, ‘the press’(방송포함)가 아니다. 언론은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빼앗아 언론의 자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1833년 이후 대중신문이 나타나기부터 본격화되었다. 이젠 언론이 해리스 후보를 만들기까지 했다. 언론은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빼앗아 대통령까지 만들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저녁 8, 9시 프라임 타임으로 시민들을 세뇌시킨다. 그것도 선거기간 내내 같은 메시지로 강도를 높여가며 해리스를 부각시켰다. 웃기는 이야기이다. 언론은 공정·정의를 상실하고, 늘 폭력과 테러를 사용한다.
한편 노동시간의 통제도 과거는 영주나 귀족이 갖고 있었다. 농노의 해방으로 자본가가 갖게 되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2020년 1월 20일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자본가가 갖고 있는 시간의 개념을 국가가 갖고 갔다. 국가사회주의라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법원이 국민의 시간을 통제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명분이다. 그 후 공공부문의 부패가 말이 아니다.
산업 중 전자산업은 시간의 중요성이 으뜸이다. 전자제품 자체가 시간을 통제하는 기구이다. 그 만드는 과정도 ‘주52시간’으로는 불가능하다. 스카이데일리 사설(11.06), 〈한국 반도체의 족쇄 ‘주 52시간제’ 풀자〉, 반도체 산업이 발전되면 당연히 국가사회주의에서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전자제품은 ‘자유의 공기’를 먹고 사는 산업이다.
“국민의힘이 이번 주 당론으로 발의하는 ‘반도체특별법’은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중요한 사항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로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 규제’의 예외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강제 조항은 반도체 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기술개발과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 예외 조항이 빠진 ‘반도체특별법’은 사실상 헛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문재인정부의 주요 정책인 ‘주 52시간 근무제’는 노동자 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 규제가 반도체와 같은 첨단기술산업에 종사하는 고소득 연구개발 인력에게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개발이 경쟁을 벌이는 이 시점에, 시간 제약을 받으며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대만 TSMC나 미국 엔비디아와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연구개발을 24시간·주 7일 내내 가동하며 필요에 따라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 이들은 주말이나 심야 시간대에도 불을 밝히고 기술개발을 지속한다. 반면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의 족쇄에 묶여 밤샘 근무가 제한되고, 긴급한 상황에서도 연구개발 인력이 자리를 비워야만 한다.”
반도체 산업은 ‘speech’와 ‘the press’를 분리시킨다. 언론에 당장 위기가 온다. 이젠 뉴스를 저녁 8, 9시에 들을 필요가 없다. 언론의 세뇌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줄어든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더이상 뉴스 시간의 제약이 없다. 미국 대선에서 부정선거 사례가 주류 언론에는 언급이 되지 않지만, 트위터에 올라온다. 의회는 당연히 앞으로 문제를 삼게 된다.
미국만 그런게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용산 대통령실이다. 국회 야당 대표의 도덕률이 엉망이다. 전혀 절제가 되지 않고 있다. 국민일보 전석운 논설위원(11.06), 〈‘공정과 상식’은 어디 갔는가〉, 윤 대통령은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다. 물론 미디어가 지금까지 스크린이 해줬다. 그게 되지 않으니, 도덕률과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행위가 하나씩 공개가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집권했다. 검찰총장직을 자진사퇴하고 대선 출마 선언을 할 때도,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을 때도 윤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는 공정과 상식이었다. 그러나 집권 2년 6개월이 흐른 지금 윤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과 상식은 어디 갔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에게 가장 요구되는 공정의 덕목은 정치 중립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2022년 3월10일 국민의힘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대통령이 된 저는 모든 공무원을 지휘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당의 사무와 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의 정치 중립과 당무 불간섭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한 달이 안 돼 윤 당선인이 국민의힘 김태흠 의원에게 충남지사 출마를 권유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선인 측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윤 당선인의 권유와 지지가 알려진 탓인지 김 의원은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현직 도지사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양승조 후보를 여유있게 누르고 이겼다. 대통령 당선인을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는 공무원으로 볼 수 있는지 논란은 있다. 그러나 취임 전에 국무총리 후보 등을 지명하는 당선인의 권한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다. 공직선거법 9조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 단체 포함)는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명태균씨의 통화에서 드러난 건 윤 당선인이 지방선거뿐 아니라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데일리안 이기선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02.28),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에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 가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는 그 말이 단순한 정치적 발언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의 공천과정을 보니 그가 말했던 ‘이재명의 민주당’이 무슨 의미였는지 짐작이 간다.
이 대표는 대선에서 패배한 지 3개월도 안 돼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리고 당 대표 경선에 나서 거대 야당의 대표직까지 거머쥐었다. 일정 기간 자숙의 시간을 가졌던 이전의 정치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그 이유는 뻔하다. 대선 유세 중에 “선거에서 지면 감옥 갈 거 같다”라고 한 그의 말에서 유추해 보면, 공천권을 담보로 삼아 민주당 의원들을 자신의 사법리스크 방탄에 이용하려는 의도였으리라. 그리고 그 의도대로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은 방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왔다.”
조선일보 사설(11.04), 〈170석 수퍼 갑 정당이 약자 흉내 내며 거리 투쟁 하다니〉, 국가사회주의에서 일어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일 서울역 앞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는 장외 집회를 열었다. 지난 6월 해병대원 특검법 장외 집회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거리로 나선 것이다. 집회에는 이재명 대표를 포함해 170명 의원 대부분이 참석했다. 민주당은 최근 성명에서 “롱패딩을 준비할 것”이라며 장외 투쟁의 장기화를 예고했다. 명분은 김건희 여사 특검 수용 촉구였지만, 실제 내용은 윤석열 정권 퇴진과 탄핵이었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뻔뻔한 부부 강도들이 철퇴를 맞게 될 것”이라고 했고, 이언주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은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국민에 맞선 대통령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며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의회 안에서 소수 정당이 더 이상 저항할 수단이 없을 때 마지막 탈출구로 선택하는 것이 장외 투쟁이다. 지금 야당의 선배 정치인들은 “싸우더라도 의회 안에서 싸우자”며 의회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다르다. 친야(親野) 단체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정권 퇴진 시위를 했다. 민주당도 정권 초기 후쿠시마 오염수 거리 투쟁을 했고, 작년 2월 이 대표가 대장동 사건 수사를 받자 장외로 나섰다. 정권의 지지 기반이 취약한 것을 이용해 초기부터 흔들어보겠다는 계산이었다.”
국가사회주의, 민중민주주의, 공산주의에서 볼 수 있는 풍속도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11.05), 〈정권 퇴진 운동 나선 민노총, 변함없는 정치 본색〉,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들려오던 그 시나리오가 반복이 된다. 죄의식이 없고, 내로남불이 현실화된다. 중세사회는 신, 자유 그리고 영생이라고 하는 틀이다. 여명기에는 왕도 단두대에 올랐다. 법 무서운 줄 알아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사회주의로 성큼 다가간다. 언론이 세뇌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친야 단체들이 이번 주말(9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서울역 집회를 계기로 정치집회가 매 주말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번 주말 집회의 명칭도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로 연쇄 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민노총 등이 현시점에서 정권 퇴진 운동에 세를 뭉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윤 대통령 지지율 20% 붕괴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 말기의 촛불 정국을 재현하려는 의도다. 이번 주말 집회에서도 오후 5시30분부터 시청역~광화문 일대에서 촛불 행진을 계획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집회 다음주인 15일로 예정된 공직선거법 위반 선고를 앞두고 대규모 군중 시위를 전개해 사법부를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민노총은 문재인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문재인 때 주택 310만채 짓고, 집장사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주담보대출로 중산층 빚덩이로 만들더니, 윤석열 정부도 그 방식을 사용한다. 동아일보 사설(11.06), 〈“그린벨트 풀어 수도권 아파트 5만 채”… 지금 속도론 그림의 떡〉, “국토교통부가 12년 만에 서울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서초구 서리풀지구에 주택 2만 채를 공급하겠다고 5일 발표했다. 경기 고양 대곡, 의왕 오전왕곡, 의정부 용현 등 서울 경계로부터 약 10km 이내 지역 3곳에도 3만 채 규모의 신규 택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내년 지구 지정, 2029년 첫 분양, 2031년 첫 입주라는 공급 시간표도 내놨다. 내년 상반기에도 수도권에 3만 채 규모의 신규 택지 후보지를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국가사회주의는 자본가가 갖고 있는 시간을 ‘주52시간제’, ‘사회적 거리두기’로 빼앗아갔다. 또한 선거란 선거는 전자 기구로 조작이 된다. 그 조작과정에서 언론은 매일 그들의 ‘나팔수’가 되었다. 그러나 전자제품의 속성은 시간을 국민들이 다시 회수하는 매체이다. ‘the press’에 세뇌를 당하는 대신, speech의 자유를 개인이 갖는 것이다. AI 딥러닝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북한에 전자제품의 알러지를 경험하지만, 얼마나 계속될지 의문이다. 진정 ‘자유의 공기’ 시대이다.
조선일보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911.06), 〈모든 것은 전자제품이 될 것이다〉, “기어이 유선 이어폰을 쓴다. 내가 비주류 유행이면 뭐든 흉내 내는 늙은 힙스터(Hipster)라서는 아니다. 얼마 전부터 유선 이어폰이 다시 유행이라는 기사들이 등장했다. “힙쟁이 필수템”이라는 기사도 있다. 힙쟁이는 힙스터의 한국식 변용이고, 필수템은 필수적인 아이템이라는 소리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 용어를 알아야 산다. 유행 때문에 다시 꺼낸 건 아니다. 나는 무선 이어폰을 구매한 적이 없다. 모두가 애플신과 삼성신에게 계몽이라도 받은 듯 무선 이어폰을 구매할 때도 꿋꿋했다. 산만한 성격이다. 뭘 자주 잃어버린다. 모르는 사이 몸에서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기기는 불안해서 쓸 수 없다. 키는 작은데 귓구멍은 또 크다. 참 쓸모없는 신체다. 내가 유선 이어폰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게으름이다. 무선 이어폰을 쓰려면 매번 충전을 해야 한다. 나는 스마트폰 충전도 곧잘 잊어버리는 인간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배터리도 자주 구입한다. 내 게으름이 지구도 망치고 있는 것이다. 게으른 자에게 충전이라는 행위처럼 귀찮은 건 없다. 요즘은 충전 없이 쓸 수 있는 것이 몇 없다. 모든 게 전자제품이 되어간다.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소가 생길 때만 해도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미래구나. 미래는 아직은 귀찮은 것이었다. 전기차를 산 지인들이 말했다. “충전이 귀찮아요” 고장도 종종 난다고 했다. 찾아보니 전기차는 모든 범주에서 내연기관차보다 고장이 많단다. 숫제 나는 전자제품 속에 살고 있다. 신축 아파트라 모든 게 전자식이다. 천장에 설치된 빨래 건조대를 올리고 내리는 일도 리모컨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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