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논평] 가톨릭 사회주의와 ‘깡패’ 사회주의.
- 자언련

- 2021년 4월 28일
- 3분 분량
가톨릭에서 신관을 들어내면 그 모습은 원형의 사회주의이다. 지금 중공, 북한의 사회주의가 얼마나 탐욕과 열정으로 타락한 사회주의인지 현실로 보여준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파시즘이다. 공산당원은 힘이 있는 인사에게는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사회주의 파시즘의 삶을 살아간다. 이 세상에서 거짓과 위선의 사회주의는 멈출 필요가 있다. 그걸 추종하는 세력들은 진정 사회주의 형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1931)이 선종하셨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의 삶은 ‘청빈’을 몸소 실천하시 분이셨다. 그의 품성을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느낀 소감은 누구에게나 부드럽게 대하시는 모습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말씀은 쉬웠으나 품격이 있으셨다.
동아일보 감갑식 문화전문기자(2021.04. 28), 〈‘모든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소서’..바지 한 벌로 18년 ‘청빈한 삶’〉. “정 추기경은 1970년 청주교구장을 맡은 뒤 한여름에 에어컨을 켜지 않았고, 바지 한 벌을 18년 동안 입을 정도로 청빈하게 생활했다. 식사 초대를 못 하는 사람이 소외감을 느낄까 봐 일절 초대를 받지 않았고, 식사는 항상 교구 내 식당에 했다. 그는 신자들이 ‘생활비에 보태 쓰라’며 한 푼 두 푼 내놓은 돈으로 40년 동안 모아 1999년 5억 원을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에 장학 기금으로 쾌척했다.”
한편 “1931년 서울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중앙고를 거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해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전쟁 때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돼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들을 겪은 것이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끌었다.”
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04.28), 〈또한 ‘학자 추기경’이었다. 그는 로마우르바노
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만 39세에 청주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지 않았다면 학자의 길을 걸었을지 모른다. 그는 1961 사제품을 받으며 친구와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켜 60권 가까운 저서·번역서를 냈다. ‘20세기의 영성가’로 손꼽히는 토머스 머튼(1915〜1968)의 대표작 ‘칠층산’을 최초로 국내에 번역·소개한 것도 정 추기경이었다. 지난 연말엔 ‘교회법 해석’ 개정판(전 6권)을 펴냈다.“
한편 정 니콜라오 추기경은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6·25 전쟁 60주년이던 2010년 그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용서의 조건’을 말했다. 그는 ‘천주교 고해성사에서도 죄의 인정, 잘 못했다는 지기반성, 다시는 말 못하지 않겠다는 뉘우침, 공개적 자백 그리고 보상이라는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불의한 공격으로 시작된 6·25전쟁에 관한 소신을 밝힌 것이다. 종교인이라 해서 ‘조건 없는 용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유와 책임을 함께 이야기한 것이다. 그는 유난히 책임을 강조했다. 정 추기경의 삶에서 사회주의는 탐욕과 열정은 절제로서 대처함으로써 책임의 범위를 좁힐 때에만 가능하다. 그게 사회주의 핵심이다. 이런 사고는 중세 세속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노동형태로 소개된 것이다.
수도원과 국가 협력의 편린을 베네틱스 수도원 출판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수공 노동은 노예들이 일(opus servile)로 시민들은 이를 경시했다. 그러나 수도자들은 베네딕트 수도원의 ‘기도하고 일하라’는 중요한 덕목으로 받아들었다. 귀족 자녀들로 채워진 수도원이 달라진 것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문화는 서유럽의 노동 개념에 토대로 마련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Ferdinand Seibt, 1987/2001, 124쪽). 귀족 문화의 수도승은 노동 문화와 어울러져 독특한 계급을 형상하였다 수도승은 무노동, 무소유, 수도원 규율에 의한 독선과 아집 등으로부터 벗어나, 노동과 사회봉사에 앞장섰다. 중간적 지위에서 들은 지속적인 빈민구호 활동을 한 결과 독립적인 사회계층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단순히 공동체적 연대 의식의 형성을 넘어선 중세의 새로운 주춧돌을 형성하였다(Ferdinand Seibt, 1987/2001, 124쪽). 여기서 서구의 사회주의가 싹이 튼다.
그 결과는 아카데미 조연상로 탄 윤여정 씨가 말을 잘 했다. 조선일보 김태훈 논설위원(04.27), 〈조연상〉, “윤여정은 ‘미나리’로 수십 번 상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틀에 박힌 수상 소감을 거부하며, 윤여정 신드롬‘을 일으켰다. 빛나는 유머 감각과 촌철살인 명구로 시상식장을 장악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장서도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는 말로 관객의 허를 찔렀고, 이어 ’내가 어릴 때부터 훌륭한 연기를 봤던 글렌 클로스를 이길 수 있겠는가. 저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각자가 승자‘라고 참신한 소감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사화주의자로 전 세계에 공언하고 다닌, 가톨릭 신자 문재인 씨 잘〜알한다. 그는 국가 망신을 자처하고 다닌다. 또한 ‘법의 지배’ 하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어떤가? 조선일보 조백건 기자(04.27), 〈대법 요직(재판연구관) 34% ‘인권법’이 장악〉이라고 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귀족 출신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를 청산하고, 노동을 값싼 것으로 보지 않고, ‘신앙인의 길’로 봤다. 그게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사회주의 사회건설’이다.
사회주의 종주국, 즉 친중 세력의 종주국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깡패’ 사회주의는 욕망과 탐욕의 덩어리이다. 박상후의 문명개화TV(2021.04.26.), 〈"늑대처럼 베끼고 베껴라"/한국이 중공내 사고사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공이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전 세계가 이제서야 중공의 본질을 깨닫고 있습니다. 중공은 국제관계든 비지니스든 그 속성이 같습니다. 중공인들의 비지니스 속성은 늑대처럼 외국의 기술을 카피하는 것입니다. 이는 중공 국영기업의 군사君師라고 일컬어지는 투자 경제 전문가 짱치차오(臧其超)가 자기입으로 밝힌 내용입니다. 중국은행등 중공의 국책은행과 국영은행의 고문인 짱치차오의 강연 영상이 며칠전 부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40년 동안 외국인이 자본과 기술, 노하우를 가지고 중공에 들어오면 처음에는 그들과 합작을 하다 결국 기술을 카피라고 몰아내는게 정해진 패턴입니다. 이는 최근 중공에서 크게 불거진 테슬라사태와도 같습니다. 오늘 방송에서는 테슬라 사태와 관련한 여러 소식들도 자세히 전합니다. 테슬라를 압살하면서 가장 이득을 보는 중공메이커 화웨이와 지리자동차입니다. 또 테슬라 사태로 테슬라의 대중화권 부총재 타오린이 매국노로 몰린 상황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테슬라 사태는 과거 구글이 퇴출됐을 때와도 같은 패턴입니다. 중공의 속성은 기업이든 국가든 사나운 늑대입니다.”
그런 사회주의 중공에 바치기 위해, 청와대는 5천 20백만 국민을 불쏘시개로 사용한다. 386 집단은 정신이 나간 사람들의 집단임에 틀림이 없다. 김한수 기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겹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 국민들에게 밤하늘의 작은 별이 되고 싶다.”(2006년 추기경 서임 후 미사 강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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