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언련 단상] 깊은 밤을 건너는 사람, 김문수.
- 자언련

- 2025년 5월 11일
- 3분 분량
깊은 밤을 건너는 사람, 김문수
긴 밤을 지새운다. 사방이 고요한 듯 어지럽고, 숨은 잔잔하나 마음은 일렁인다. 마치 파고가 높은 바다 한가운데 작은 나룻배를 띄워놓은 듯한 밤이다. 국가의 운명이 기울고 있다는 예감은 더 이상 감상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이 땅의 현실이다.
자유와 질서를 떠받치던 기반은 무너지고, 말과 진실의 자리는 바뀌었다. 국가의 뼈대인 헌법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공무원 조직은 침묵하거나 타협한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 거울이 되었으며, 시민단체는 정의의 대리인을 자처하면서 이념의 앞잡이가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체제의 경계선에 서 있다.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체제 전쟁, 정신의 전쟁이다.
그런 시절, 나는 한 사람을 떠올린다. 김문수. 긴 밤을 먼저 건넌 사람. 외롭고 거칠었지만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사람.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혼자의 걸음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정치인의 범주에 갇힐 수 없는 인물이다. 누군가의 설계나 전략으로 세워진 이가 아니고, 당장의 인기나 지지율로 올라선 사람도 아니다. 김문수는 시대가 만들어낸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대의 불의와 싸우며 단련된 전사다.
그의 젊은 시절은 땀과 피로 얼룩진 투쟁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좌파의 광기가 아니라, 진정한 민중을 위한 헌신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이념을 살았고, 그 누구보다 먼저 그것의 허망함을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그는 돌아섰다. 더 큰 진실, 더 깊은 자유, 더 무거운 책임을 위해. 그 선택은 배신이 아니라, 각성의 용기였다.
나는 그가 김유신처럼 말의 고삐를 돌려세운 사람이라 믿는다. 모두가 무너지고 있을 때 오히려 일어서는 사람, 공포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끝내 버텨낸 사람.
경기도지사 시절, 그는 ‘권력’을 ‘봉사’로 바꾸어 냈다. 불필요한 관행은 잘라냈고, 허울 좋은 정책은 밀어냈다. 표가 되지 않아도 꼭 필요한 일을 골랐고, 자신이 눈에 띄지 않더라도 국민이 편한 길을 선택했다. 그는 소탈한 차림으로 도청을 거닐었고, ‘도지사’라는 타이틀보다 ‘일꾼’이라는 호칭을 좋아했다. 그것이 김문수의 본질이었다.
그리고 그는 국회 앞에서 싸웠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짓밟으려 할 때, 그는 국회 담장 아래 외롭게 섰다. 빗속에서, 깃발 하나 없이, 외친 목소리. 그 장면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고요한 울림으로 남는다. 많은 이들이 이익을 계산할 때 그는 헌신을 선택했다. 그것이 김문수다.
장기표 선생의 상가에서도 그는 그랬다. 말없이 찾아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누구보다 깊이 슬퍼했지만, 누구보다 절제되었다. 말 없는 애도의 품격, 그것은 삶의 품성이 없다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국회의사당을 찾았을 때 그는 여전히 꼿꼿했다. 허리를 굽히지 않았고, 말은 선명했다. 그의 눈빛에는 지키겠다는 결기와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이 배어 있었다. 군복은 없었지만, 그는 이미 싸우는 병사였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김문수는 이 시대의 충무공 이순신이다.
충무공은 절망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열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켰고, 단 한 번도 백성과 나라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난중일기』에는 오직 충절과 희생만이 기록되어 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나이다"라는 말은 단순한 전술 보고가 아니라, 자기를 버리고 나라를 살리는 절대 충성의 언어였다.
김문수 또한 그러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칠천량 패전 직후와 다를 바 없다. 나라 안은 무너졌고, 적들은 문 안까지 들어와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조차, 그는 외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를 버린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무도 박수 치지 않아도, 그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진짜 충성이고, 진짜 정치다.
그에 반해, 이재명은 정반대다. 그는 진실을 가리고, 말을 선동으로 바꾸며, 감정을 정치의 무기로 휘두른다. 국민을 위하는 듯 말하지만 결국 자기 권력을 위해 국민을 도구로 삼는다. 김문수의 정치는 희생의 언어이고, 이재명의 정치는 기만의 언어다. 그것이 둘 사이의 뚜렷한 경계선이다.
우리는 묻는다.
누가 이 밤을 건너갈 수 있는가?
누가 무너진 체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가?
누가 진실의 깃발을 다시 들어 올릴 수 있는가?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김문수다.
그는 이 땅의 충무공이다.
그는 깊은 밤을 건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이 나라를, 다시 새벽으로 이끌 사람이다.
김문수,
그는 화려하지 않지만 고결하다.
크게 외치지 않지만 깊이 울린다.
마침내 우리는 깨닫게 된다.
진짜 지도자는 자기 말보다 자기 삶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삶의 끝에서, 우리는
그가 이 시대의 충무공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2025. 5. 11 자유언론국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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