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논평]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나라인가?
- 자언련

- 2024년 1월 12일
- 4분 분량
나라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포퓰리즘 쪽으로 계속 기울고 있다. 그러나 원칙이 필요한 시점이다. 헌법정신으로 다시 돌아가, 초심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경제는 자유주의·사장경제로 돌아가고, 그 근본은 사람 잘 키우는데 몰두하자. ‘줄푸세’가 그 해답이라고 한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2024.01.11.), “사교육 카르텔 타파. 이젠 제대로 하자. 척결이냐? 유착이냐?”(한반도선진화재단, 한국대학교수협의회·미래교육자유포럼 등 주최)에서 “교육, 그래도 멀리 보자-①한 번 심어 한 번 거두는 것이 곡식, ②한 번 심어 열 번 거두는 것이 나무, ③한 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람 키우는 일에 열중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로 양 교수는 “‘저출한 위기 핵심, 사교육’이 망국론을 치닫고 있다.”라고 했다. 사교육 현장에서 ‘정피아’, ‘교피아’, ‘〜피아’...등가 득세한다고 한다. 카르텔이 심하다는 소리이다. 교육에 공개시장이 아니라, 비공개 시장이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교과 과정도 카르텔이 양산되도록 하고 있다.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공공부문이 사적 카르텔로 움직인다. 사람 키우는 일이 엉뚱하게 흘러간다. 교과 내용이 그렇게 흘러가게 만들고 있다. 중앙일보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국가교육위원회 미래과학인재양성위원(01.12), AI 시대는 물리학·수학·논리학이 으뜸 학문으로 중요성을 지닌다. “물리학에서만이 아니다. 관측과 측정에서 출발하는 경험과학(empirical science)의 수치는 모두 이런 측정 오차를 내포한다. 측정이 오차를 포함한다는 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만으로도 수능 성적으로 줄 세우는 일이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객관식이라는 것이다. 거기엔 주관식 평가도 없고 정성적인 평가도 없다. 이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지식을 단편적으로 암기하고 문제 유형을 분석해서 오답을 피해 정답을 골라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얄팍한 기술은 시험이 끝나고 나면 어디에도 쓸 수 없다. 정작 필요한 것은 학문을 논리적이고 심층적으로 이해하여 학문의 원리와 구조를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일이다. 학습량이 많은 학생에겐 사치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미래의 잠재력,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학문을 닦아나갈 능력을 평가하려는 수학능력시험의 본래 취지와는 멀어진다. 수학능력시험이 절차적으로 공정하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이 절차적 공정성이 정당성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교육 본연의 목적과 가치에서 상당 부분 유리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이 공정성의 덫에 갇힌 것이다.”
공정성에도 포퓰리즘이 작동한다. 부의 축적도 평등의 포퓰리즘이 작동한다. 이투데이 김병준 강남대 교수·경영학(01.11), 〈[논현로] 상속세 폐지, 양도세로 일원화를〉, 기업은 ‘한 번 심어 열 번 거두는 것이 나무’일 터인데 말이다...그런데 포퓰리즘적 평등으로 씨암탉을 계속 잡고 있다. 이젠 상속세 무서워, 중소기업은 매매처분한다. 그리고 국가가 장래 직업을 전부 제공해줄 것 같다. 북한 닮아간다.
스카이데일리 김태산 전체코 북한무역대표(01.12) 〈한국 생활 20년 동안 풀지 못한 의문〉, 북한에 생명, 자유, 재산 등 기본권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의 내 집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신성불가침 구역이다. 한국에서는 범죄자의 집이라도 법적인 영장이 없으면 수색은 물론 집안에 일절 들어갈 수 없다.그러나 평양의 내 집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주인인 수령의 집이었다. 나에게 집에 관한 권리는 전혀 없었다. 나는 오직 그 집에서 잠만 잘 수 있는 수령의 하인일 뿐이었다. 그래서 김씨 가문은 자기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야밤에 트럭을 들이대고 잠자는 사람들을 짐짝처럼 트럭에 실어서 정치범수용소나 심심산골로 추방하기를 마음대로 한다.”
대한민국은 물론 다르다. 상속세를 거둔다. 그것 포퓰리즘으로 가면 북한과 같은 사회가 된다. 김병준 교수는 “2020년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현 이재용 회장 등 유족에게 부담된 상속세가 12조 원을 넘어섰다. 이는 이건희 회장의 총 상속재산 26조 원 중 3조여 원의 고가 미술품 등을 사회에 환원하고도 남긴 재산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아무리 재벌가라 하지만 재산구성의 대부분이 삼성전자 등 주식 지분과 에버랜드 등에 있는 부동산이다. 상속세 납부를 일시적으로 하기는 불가능하여 상속주식 등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아 10조여 원에 대해 5년간 분납하기로 한 상태다. 우리나라 상속세는 2019년을 기준으로 전체 조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9%로 OECD 국가들 중 최고(2위 벨기에 1.46%, 3위 프랑스 1.38%)다. 이는 명목상 최고상속세율 50%에, 삼성가 경우처럼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지분이라 하여 할증률 20%가 더해져 60%로 정해지는 까닭이다. 이에 비해 명목최고세율이 55%로 우리보다 높은 일본은 80%의 세액감면을 할 수 있는 가업상속공제 등을 활용하여 실효세율은 우리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2019년 말 현재 38개 OECD 회원국들 중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는 총 12개국이며 이 중 10개국은 상속세를 부과하다 폐지했으며 2개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은 원래 상속세가 없었다. 참고로 스웨덴은 2000년 아스트라(Astra)사의 대주주 사망으로 유족들이 당시 65%의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상속주식을 처분하는 중 주가 하락으로 전 재산을 잃고 국외로 망명한 사례가 있다.”
1987년 86세대는 계속 포퓰리즘의 평등을 강조하면서, 자유주의·시장경제의 맥락을 상실해간다. 공공부문이 팽창하고, 그 속내는 사적 카르텔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가계나 국가나 긴 호흡의 정책이 불가능하게 된다. 미래 투자를 하지 않게 된다. 카르텔 목소리는 계속 높아진다. 스카이데일리 장혜원 기자(01.12), 〈성난 민심...‘특단의 부정선거 방지 대책 제시하라’〉, 임명신 정치부장, 〈이양승 군산대 교수-‘특정당 몰표’ 행태 벗어나야 호남 미래 열린다.〉라고 한다. 포퓰리즘의 공정성 덫에 걸려있다. 그 결과는 평준 하향화하고, 추락의 길로 떨어지고 있다. 86 운동권식 포퓰리즘이 작동한 것이다. 그것도 고약한 ‘내로남불’이다.
미래가 불 투명하다. ‘한 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에 문제가 생겼다. 조선일보 사설(01.12), 〈70대 이상이 20대 인구 추월, 저출생·고령화 쓰나미 덮쳐왔다〉, “지난해 70대 이상 인구가 631만여 명으로 20대 인구(619만여 명)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전년에 비해 70대 이상 인구는 23만여 명(3.9%) 증가한 반면 20대 인구는 21만여 명(3.4%)이나 줄어들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주면서, 그 쓰나미가 이제 우리를 덮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앞으로 고령 인구는 더 늘고 젊은이는 더 줄어드는 것은 ‘정해진 미래’다. 지금 19세 이하(15.6%) 인구가 50대(16.9%)보다 적고 60대(14.9%)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인구를 연령대별로 그린 인구피라미드는 1960년대 ‘삼각형’에서 현재의 ‘항아리’를 지나 비극적인 ‘역삼각형’ 형태로 가고 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국가 소멸 구조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저출산·고령화는 경제·사회적 역동성과 국가 재정 역량을 쪼그라뜨려 나라 전체를 ‘수축 사회’로 만든다. 생산 인구 감소로 세입은 줄고 노인 복지, 의료비 등 정부 지출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 공유경제, 포괄적 성장 등은 다 엉터리 같은 소리이다. 북한도 이젠 달라진다고 한다. 국정원이 북한 사회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신규진 기자(01.12), 〈국정원(전략연구원) 고위 탈북민 채용. 文 정부때보다 4배 늘었다.〉, 전략연이 ‘현정부 들어 30여명 채용’이라고 했다.
원래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자기 탐욕도 일정 부분 수용한다. 포퓰리즘의 공정성은 맞지 않다는 소리이다. 그 뒤에는 지독한 카르텔 천국을 만들어 놓았다. 동아일보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01.12), 〈“시민의 권력을 독점하지 말라”… 도편추방제의 경고장〉, “기원전 507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을 통해 확립된 민주정은 젊고 활기찬 정체였다. 이런 활력이 없었다면, 아테나이는 490년과 480년, 두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 침략에 맞서 그리스를 지킨 선봉장 역할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전쟁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있었다. 페르시아 군대는 엄청난 규모였지만 피정복민을 포함한 다민족 연합군이었고 ‘예속 상태에서’ 왕을 위해 싸우는 군대였다. 반면 아테나이 군대는 규모가 작아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싸우는 군대였다. 헤로도토스의 말대로 민주정은 자신에게 유익한 성과를 위해서 일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 함께 싸우게 했다.”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나라가 아닌가? ‘한 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그들이 카르텔 그만하고, 공개시장에서 함께 싸울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 줄푸세만큼 좋은 정책이 없다고 한다. 이투데이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01.09), 〈우파가치 담은 ‘줄·푸·세’로 개혁 추동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나라인가를 점검하자. “‘줄·푸·세’란 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는 2012년 대선(大選) 당시 박근혜 후보의 경제공약이다. 박근혜 후보의 줄·푸·세 만큼 보수의 핵심가치를 담아낸 공약은 없다. 하지만 줄·푸·세 공약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힘을 잃었다. 안타깝게도 인기영합에 함몰된 ‘경제민주화’에 의해 그 가치가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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