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논평] 광기의 시대, 참된 권위.
초지능사회(superintelligence society)는 디지털 전체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감각에 기초한 포퓰리즘(immediacy)으로는 절대로 초지능사회에서 성공을 할 수 없다. 물론 초지능사회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이다. 초기 인터넷은 행위자들(actors)의 행위였다. 그러나 초지능사회에서는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그때 개인은 기관(agencies)으로 봐도 무관하다. 그는 AI의 도움으로 엄청난 정보를 가진 개인이다. 데이터센터의 도움으로 인터넷의 행위자로 등장한 것이다.
기업에서는 플랫폼의 연계이고, 시장이다. 한 기업의 제품은 수 많은 자회사의 소재와 부품을 갖고 제품이 완성된다. 그 때는 기관이 플랫폼이 된다. 그렇다면 감각에 의존한 포퓰리즘 내용은 ‘자기 소외의 언어’(self alienation language)를 사용해줘야 한다. 기관으로서의 개인은 다른 행위자의 이기적 목적(selfish purposes)을 걸러줘야 한다. 물론 포퓰리즘의 이기적 목적을 숨기고, 선전·선동을 하면서 포장할 수 있다.
진실이 숨게 되고 거짓이 산더미가 되면, 그 사회는 초지능사회의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안된다고 한다. 물론 방법이 있다. 은유법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천지일보 임창덕 한국농촌희망연구원장(2026. 10.01), 〈〔시선 너머] 배재고 야구 구호,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적 사실은 엄정히 확인돼야 하지만, 그 맥락은 끊임없이 논의되고 수정돼야 한다는 말이다. 카(E. H. Carr)가 역사를 대화로 규정했다면,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그 대화가 성립하려면 개인이 상대의 주장이나 집단적 분위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철저한 검증과 성찰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영화 ‘암살자(들)’의 왜곡 논란이나 국회 5.18 토론회를 둘러싼 여야 공방에서 보듯, 역사를 존중하는 것과 역사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재해석마저 막는 것은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역사의 성역화는 대개 양극단으로 나타난다. 한쪽에서는 질문 자체가 봉쇄되고, 다른 쪽에서는 역사를 서툴게 소환한 이에 대한 과잉 단죄가 일어난다. 방향은 반대지만 둘 다 ‘대화’가 아닌 ‘침묵의 강요’라는 점에서 뿌리가 같다. 특히 배재고 야구부의 5.18 연상 구호 논란이 후자에 해당한다.
구호 논란으로 두 어린 선수가 결국 야구를 포기했다. 운동이 삶의 전부였을 아이들에게 이번 일은 한 인간의 미래를 꺾어버린 사회적 폭력에 가깝다. 구호 자체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적절하지 않았으나, 학생들이 깊은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이를 외쳤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래 집단 속에서 그 역사적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따라 한 철없는 모방적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치권과 언론은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기에 앞서 정치 이슈화에 열을 올렸다...
서로의 분노를 경쟁적으로 모방하는 사이, 갈등은 사건의 본질을 넘어 여야, 진보와 보수 진영 간 이념 논쟁으로 변질됐다. 이것이 지라르가 경고한 ‘1차 모방적 위기’다. 이때 대중은 원인을 차분히 성찰하기보다, 가장 약한 고리를 표적 삼아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 이른바 ‘희생양 메커니즘’이다. 어린 학생들의 미래를 단죄함으로써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희생양을 만든다고 해서 우리가 직면한 역사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직접 사죄를 하고 선처를 통해 잘 마무리된 듯싶었으나 야구 포기 소식은 오히려 정당성과 가혹성을 둘러싼 새로운 대립이라는 ‘2차 모방적 위기’를 낳고 있다.
지라르는 저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자신의 욕망이나 분노를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 믿는 태도를 ‘낭만적 거짓’이라 불렀다. 그 분노가 실은 타인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찰이야말로 ‘소설적 진실’이다. 배재고 야구부를 향한 격렬한 분노 역시 스스로 도달한 독립적 판단이라 믿고 싶겠지만, 실은 앞서 분노한 이들을 모방하며 증폭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를 직시하는 것이 바로 소설적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다. 우리는 역사적 상처를 기억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또 다른 폭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초지능사회(superintelligence society)는 헤겔에서 ‘감각적 확신 장에 나타난 언어의 ‘신적인’ 보편성’(The ‘divine’ universality of language in sense certainty)으로 표현된다.(Hegel, 1952/1977: 559) 그 관점에서 본다면 〈李, 北엔 화 한번 못 내더니…우크라엔 ‘大분노’ 이유는?〉(매일신문TV, 10.02)라고 한다.
원래 공산주의는 원시공산사회를 원형으로 한다. 2, 3일 먹을 것을 준비하고, 노동은 수렵·채취·어로로서 생활한다. 그들은 노동으로부터 행복도 없고, 그 얻은 재산도 필요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뺏고 뺏기는 폭력·테러가 있을 뿐이다.
중앙일보 정영교·하준호· 심석용 기자(09.30), 〈유엔사 “정전협정 위반”…북 김여정 “자작광대극”〉,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장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폭발한 지뢰가 북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한국군의 조사 결과를 ‘자작극’으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한국군이 이번 사고를 빌미로 국경선에서 실사격에 나설 경우 “즉시적이고 가차 없는 보복”에 나서겠다고도 위협했다. 단순히 지뢰 폭발 사고의 책임을 부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DMZ 일대에서 진행 중인 국경선 요새화 작업의 정당성과 향후 무력 충돌의 책임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30일 김여정이 전날 담화를 통해 “이번 사건은 10여 년 전 ‘목함지뢰 사건’을 그대로 방불케 하는 명백한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1일 사고가 발생한 지 여드레, 군 당국이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 하루 만이다. 북한은 2015년 목함지뢰 사건 당시에도 자신들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남측 발표를 ‘날조’ ‘모략’으로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변인 격인 김여정이 곧바로 등판한 점에 주목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종 조사 결과 발표 전에 ‘자작극’ 프레임을 선점하고 실사격이라는 ‘문턱’을 명시해 상응조치 결정을 사전에 위축시키려는 의도”라고 짚었다...하지만 이날 유엔군사령부(UNC·유엔사)는 북한군이 MDL 이남에 지뢰를 매설했다며 정전협정 위반을 공식 확인했다.”
초지능사회 언어로 표현을 한다. 트루스데일리 조정진 대표기자(10.04), 〈北, 서부전선·동부전선 이어 중부전선 MDL도 월경 빈발〉, “특히 서부전선 25사단 지역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가 폭발해 우리 장병 3명이 크게 다친 데 이어, 중부전선 15사단 지역에서도 북한군의 MDL 이남 지뢰 매설 정황이 확인되면서 북한의 이른바 ‘국경선 요새화’가 DMZ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부전선 15사단에서도 “북한군 지뢰 상자 들고 작업”… MDL 이남 지뢰지대 정황
MBN은 2일 단독보도를 통해 강원 철원·화천 일대 중부전선을 담당하는 육군 15사단 지역에서 북한군의 지뢰 매설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MBN에 따르면 15사단은 올해 초 MDL 북쪽 약 20m 지점에서 북한군이 땅을 파헤친 흔적을 식별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이 지뢰가 담긴 상자를 들고 이동하는 모습도 포착됐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당 지역에서 북한군이 지난해 수차례 MDL을 넘어온 사실을 전했다. 이에 따라 북한 측에서 진행하던 지뢰 매설 작업이 MDL 남쪽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우리 군이 위성으로 포착한 MDL 이남의 북한군 지뢰지대 추정 지역도 여러 곳으로 알려졌다.
MBN은 북한이 DMZ 전 전선에 걸쳐 지뢰를 매설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수백 발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구체적인 매설 규모와 정확한 위치, 매설 시점은 군 당국의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난달 21일 서부전선 25사단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가 특정 지역의 우발적 사건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미국민주당이나, 대한민국 더불어민주당이나 막상막하이다. 중앙Sunday 강태화 워싱턴 특파원(10.03), 〈“A+인데 여론조작” 트럼프, 비상사태 선포 배제 안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자신의 두 번째 임기 성적과 관련해 “정부 운영과 경제 등 모든 면에서 A+”라고 주장했다. 다음달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국 지원 유세에 본격 돌입하면서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상사태를 선포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간선거 지원 유세를 위해 텍사스로 출발하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론이 우리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고 있다”며 부정적 여론 증가를 언론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거둔 성과에 대해 A+를 매겼다. 하지만 이날 AP통신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트럼프 행정부 경제 전반에 대한 지지율은 26%에 그쳤고 선거 핵심 이슈 중 하나인 물가에 대해서도 17%만 현 상황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공화당 지지자조차 38%만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 전쟁에 대한 지지율도 28%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만큼 부패한 여론조사 기관들이 내놓은 조작된 가짜 수치”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날 공개된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도 “여론조사는 조작됐고 수치는 가짜”라며 “실제 수치는 그보다 훨씬 높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지능사회를 기업에 맡긴다고 한다. 이 사회는 기업이 주도하는 비지니스 모델 사회이다. 정부가 들어갈 곳이 별로 없다. 동아일보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10. 01), 〈‘左 머스크-右 젠슨 황’ 앉힌 트럼프 “AI 규제, 자율에 맡길 것”〉, “백악관 오찬장에 모인 빅테크 수장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인공지능(AI)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AI 자율규제 방침’을 천명했다. 이날 행사에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트럼프 대통령, 일론 머스크 xAI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등이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연방정부의 AI 통합 서비스 ‘아메리카닷거브(America.gov)’ 출범도 발표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국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을 워싱턴 백악관으로 불러 인공지능(AI)과 관련된 규제를 기업 자율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위험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 규제보다 기업 자율에 맡기겠다는 뜻을 또 한번 나타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일론 머스크 xAI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등 AI 기술을 선도하는 빅테크 수장들과 오찬을 가진 뒤 “(AI와 관련해) 엄청난 수준의 자율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법무부나 연방수사국(FBI) 등을 통해서도 규제가 자동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자율 규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 트럼프 “중국 앞서 있고 이를 유지하고 싶어”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AI 패권 경쟁에 대해 “승자와 패자가 있을 거고, 아마 2등은 없을 것”이라며 미국이 앞서 있을 때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성장을 억누르고 싶지 않다”며 “우리는 지금 중국과 다른 모든 나라보다 앞서 있고 이를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일부 빅테크 CEO와 연구진들 사이에서 최근 제기되고 있는 ‘AI 속도 조절론’을 사실상 일축한 것.”
천지일보 손우화 토목기술사·공학박사(10.01), 〈[AI와 기술] AI는 건설기술을 어떻게 바꾸는가〉, “건설은 오랫동안 사람의 경험과 숙련에 크게 의존해 온 산업이다. 설계자는 도면을 그리고, 기술자는 현장을 관리하며, 작업자는 실제로 공사를 수행하며 장비를 움직였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건설현장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설계에서 시공, 안전관리, 유지관리까지 모든 과정에 디지털 기술이 들어오고 있다. 이제 건설은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구조물을 만드는 산업에서 데이터와 AI를 함께 활용하는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 있다. BIM은 건축물이나 교량, 터널 같은 시설물을 컴퓨터 안에 3차원으로 미리 만들어 보는 기술이다. 단순한 3차원 도면이 아니라 구조물의 크기와 재료, 공사비, 공정, 유지관리 정보까지 하나의 디지털 모델에 담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실제 구조물을 짓기 전에 컴퓨터 속에 ‘쌍둥이 구조물’을 먼저 만들어 보는 것이다.
기존의 2차원 도면에서는 여러 도면을 각각 살펴야 했지만 BIM에서는 구조물 전체를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설계 단계에서 배관과 구조물이 서로 간섭하는 부분을 미리 찾아내고, 공사 순서를 가상으로 점검할 수도 있다. 여기에 AI가 결합하면 여러 설계 대안을 비교해 경제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BIM은 단순한 설계 프로그램을 넘어 건설사업의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디지털 기반이다.
BIM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개념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다. BIM이 시설물을 디지털 공간에 만들어 놓는 것이라면, 디지털 트윈은 실제 시설물의 상태를 센서와 통신망을 통해 가상공간에 계속 반영한다. 예를 들어 교량의 센서가 진동이나 처짐, 온도 변화를 측정하면 그 정보가 디지털 모델로 전달된다. AI는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찾아내고 앞으로 발생할 문제까지 예측할 수 있다.
이는 건설기술의 중요한 변화를 뜻한다. 지금까지 시설물 관리는 문제가 발생한 뒤 보수하는 방식이 많았다면 앞으로는 AI를 이용해 이상 징후를 미리 발견하고 필요한 시점에 보수하는 ‘예측형 유지관리’로 바뀔 수 있다.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대형 교량이나 터널, 댐과 같은 시설물일수록 효과가 크다.
드론도 건설현장의 눈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기술자가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측량해야 했다. 이제는 드론이 현장을 촬영하고 AI가 영상 데이터를 분석해 공사 진행 상황을 확인한다. LiDAR(라이다, Light Detection And Ranging) 같은 레이저 측량기술을 이용하면 지형과 구조물을 정밀한 3차원 데이터로 만들 수 있다. 사람이 접근하기 위험한 비탈면이나 높은 구조물의 점검에도 활용할 수 있어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인다.
로봇과 자동시공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반복적인 자재 운반이나 측량, 콘크리트 작업 등에 로봇과 자동화 장비를 활용하고, 굴착기와 불도저 같은 건설기계도 위치정보와 센서를 이용해 정밀하게 작업할 수 있다. 앞으로는 AI가 설계정보와 현장 상황을 분석하고 건설기계가 그 정보를 받아 작업하는 ‘자동시공’이 점차 확대될 것이다.”
대한민국 반도체 광기의 역사는 좌익 김영삼 IMF 구제금융 불러오고, 김대중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김대중은 인터넷을 사용하자 말자, 2002년 부정선거로 디지털 전체주의로 갔다. “쿨한 경제학(10.02), 〈"다시 돌아온 LG 반도체" 미국·일본 뛰어넘은 신기술에 지금 전 세계가 경악한 진짜 이유〉, 노동의 행복은 이런 곳에서 일어나 인류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 “"빼앗긴 반도체 공장이 세계 AI 메모리 1위의 심장이 됐습니다."
세계 D램 6위였던 LG반도체는 실력이 아니라 서류 한 장 때문에 남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1999년 여의도 한강 둔치에 8,000명이 모였지만 결국 2조 5,600억 원에 팔렸습니다.
빚더미 속 하이닉스는 헌 장비를 고쳐 쓰며 버텼습니다.
그 공장의 절반인 청주는 원래 LG 것이었습니다.
메모리는 세계 1위인데 그 메모리를 찍어내는 장비 국산화율은 20%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HBM을 쌓아 붙이는 장비만큼은 열 대 중 일곱 대가 한국산입니다.
반도체에서 두 번 손을 뗐던 LG가 27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칩이 아니라 다음 세대 장비인 하이브리드 본더를 들고 왔습니다.”
대한민국 광기의 역사는 정권이 앞장선다. 조선일보 김강한·최아리·구동완 기자(10.01), 〈"시간도 돈도 날렸다"… 정부 주도 AI 사업 실효성 논란〉, “2000억 투입 '국대AI' 미래 불투명. 세금 2000억원이 투입된 ‘국가대표 AI’(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사업의 향방을 놓고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인 ‘프런티어 AI’를 개발하기 위한 별도 프로젝트를 검토하면서, 기존 사업의 평가 방식과 후속 지원에 대한 의문이 커졌기 때문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독파모 사업은 계속된다”고 했지만, 업계에선 “사실상 중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논란은 국가대표 AI에 그치지 않는다. 전 국민에게 무료 AI를 제공하는 ‘모두의 AI’와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을 놓고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3차 평가·후속 지원 불투명
정부는 지난해 8월 공모로 국가대표 AI 기업 5곳을 선정했다. 성능 평가를 거쳐 이르면 올해 말 최종 2팀을 추리고, 2027년 이들에게 4차 지원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총예산 5300억원을 투입해 글로벌 프런티어 모델 성능의 95%에 이르는 독자 모델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과기정통부는 최근 별도의 프런티어 AI 개발 계획을 짜고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30일 “3팀 중 1팀을 떨어뜨리는 서바이벌 방식의 3차 평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는 새 사업을 추진할 민관 합작 SPC(특수목적법인) 설립도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방향 전환의 배경엔 ‘기존 사업만으로 미·중과의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다. 배 부총리는 29일 밤 페이스북에 “불과 1년 사이 세계 AI 경쟁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프런티어 AI를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고 썼다. 이어 “대한민국도 프런티어 AI에 도전해야 한다”고 했다.
배 부총리는 “이제는 ‘누구를 탈락시킬 것인가’보다 ‘어떻게 더 많은 가능성을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독파모 3차는 계획대로 제대로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다른 해석이 나온다. AI 업계 고위 인사는 “3차까지만 마무리하겠다는 뜻이라 사실상 독파모 사업 계획은 중단되는 것 같다”며 “그동안 시간도 돈도 버린 셈”이라고 했다.
새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시장 규모나 보유한 데이터 규모를 감안했을 때 소버린 AI가 과연 가능할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국가의 기능은 안보를 튼튼히 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러나 광기가 발동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판문점 미루나무사건으로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원시공산사회는 폭력·테러의 세상이다. 초지능사회는 그런 짓 하지 말자는 사회이다. 미루나무 사건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군 측 경비병들이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미군 장교 2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군 측 경비병들이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미군 장교 2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국가기록포털)”
천지일보 사설(10.01), 〈검찰 78년 막 내리는데… 공소청·중수청 ‘반쪽 출범’〉, 중국 공산당과 같은 체제를 유지할 생각이다.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2일 출범한다. 1948년 출범한 검찰청이 78년 만에 문을 닫고, 검찰이 함께 맡아온 수사와 기소 기능을 두 기관으로 분리하는 형사사법 체계의 대전환이다. 문제는 이 거대한 변화가 새 제도의 안정적 작동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그 자체로 논의할 수 있는 사법개혁의 방향이다. 권한을 나눠 상호 견제하도록 하고 수사기관의 과도한 권한을 통제하자는 취지 역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명분이 타당해도 형사사법 제도는 구호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범죄 수사와 기소, 재판은 한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촘촘히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생긴 작은 공백도 결국 사건 지연과 책임 떠넘기기, 피해자 구제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출범을 코앞에 두고도 새 체제에는 불안 요소가 적지 않다. 중수청은 2874명 규모로 출범하도록 설계됐지만 인력 확보와 조직 안착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고, 관계 법령과 사건 처리 체계를 새 구조에 맞추는 작업도 출범 직전까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관장 리더십까지 제때 확립되지 못한다면 현장의 혼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형사사법 개편에서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기준은 어느 기관이 더 많은 권한을 갖느냐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되느냐다. 사건이 어느 기관 소관인지 다투는 사이 수사가 지연되거나, 수사와 공소 사이의 정보 단절로 범죄 대응력이 약화된다면 제도 개혁의 비용은 고스란히 피해자와 국민이 떠안게 된다. 반대로 권한 분산의 장점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기관 간 책임과 협력 절차부터 빈틈없이 갖춰야 한다.
이미 법으로 정해진 새 체제를 되돌리는 논쟁에만 매달릴 때도 아니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필요한 인력과 하위 규정을 신속히 정비하고, 사건 이첩·보완 요구·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행 뒤에는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사건 처리 기간, 수사 공백, 피해자 구제 실적 등 객관적 지표로 제도의 작동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형사사법 제도는 정치적 성과를 과시하는 무대가 아니다. 사람의 자유와 권리, 범죄 피해자의 일상이 걸린 국가의 기본 시스템이다. 78년 된 제도를 바꾸는 대수술이라면 속도보다 완성도가 우선이어야 했다. 이제라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출범’ 자체를 성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국민이 불안하지 않은 형사사법 체제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초지능사회가 아니라, 광기의 발동이다. 초지능사회의 기관으로서의 개인기능을 살려야 한다. 국민일보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10.02), 〈[바이블시론] 광기의 시대, 참된 권위〉, “서울역 부근에 살다 보니 주말이면 가까운 도심 광장이 둘로 갈라지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이쪽 확성기가 커지면 저쪽 확성기도 커지고, 그 굉음 속에 지나다 보면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더 서글픈 것은 양쪽 어디에서나 기도와 찬송이 구호처럼 울려 퍼진다는 사실이다. 정치의 언어가 신앙의 언어를 삼켜버린다. 불안이 깊어질수록 한국 사회의 심성은 사나워지고, 돈과 권력이 어느새 하나님 자리를 슬금슬금 차지한다.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종교의 기능을 감당할 수 없는 사회의 복잡성을 견딜 만한 의미로 바꾸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그 복잡성을 끌어안기는커녕 불붙은 광장에 기름을 붓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그 와중에 너나없이 권위가 무너졌다고 개탄하며, 그러니 더 센 주먹, 더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교회 안팎에서 커져 간다. 정말 우리에게 그런 힘이 없어서 이 광기의 시대를 견뎌야 하는 것일까? 권위란 무엇일까?
라틴어에서 권위를 뜻하는 ‘아욱토리타스(auctoritas)’는 ‘자라게 하다’라는 동사 ‘아우게레(augere)’에서 나왔다. 로마의 원로원을 떠올려보자. 원로원은 군대도 법 집행력도 쥐지 않았지만, 로마는 그 뜻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키케로는 ‘권력은 시민에게, 권위는 원로원에 있다’고 정리했고, 역사가 테오도어 몸젠은 이 권위를 ‘충고보다는 무겁고, 명령보다는 가벼운 것’이라 불렀다. 원로들은 명령하는 대신 공동체가 뿌리내리고 자라도록 무게를 실어 주었다. 로마인은 이 권위를 강제력인 ‘포테스타스(potestas)’와 분명히 구별했다. 권위란 타인의 생명을 북돋는 힘이지, 짓누르는 힘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 구분을 이렇게 되살린다. “힘이 동원되는 곳에서 권위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권위가 살아있는 곳에는 애초에 강제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 진단을 한국 사회와 교회에 비추면 뼈아프다. 목소리를 높이고 세를 과시하며 권력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모습은 힘이 아니라 권위를 잃었다는 자백이다. 교회 크기와 교인 수, 동원한 인파로 영향력을 환산할 때마다 교회는 이미 세상의 셈법에 투항한 셈이다. 오늘 우리에게 없는 것은 힘이 아니다. 정작 사라진 것은 생명을 자라게 하는 권위, 곧 편 손의 권위다.
복음서는 이 역설을 정확히 가르친다. 가버나움 회당의 사람들은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 있는 자처럼 가르치시는 것에 놀랐다(막 1:22). 여기서 권위로 옮긴 헬라어 ‘엑수시아(exousia)’는 남을 굴복시키는 완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병든 자를 일으키고 경계 밖으로 밀려난 ‘죄인’들을 껴안아 새 삶으로 자라게 하는 힘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방의 집권자들처럼 백성을 내리누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막 10:42~43). 그 권위의 절정이 다름아닌 십자가다. 세상을 호령할 수 있던 분이 도리어 두 팔을 활짝 펴고 못 박히셨다. 루터가 영광의 신학 대신 십자가의 신학을 붙든 것도 하나님이 그 무력함 속에 자신을 드러내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끝내 이기지 못한 권위가 거기 있다.
한국교회가 광장에서 더 큰 마이크를 잡는다고 더 큰 권위를 가지는 게 아니다. 양쪽 극단 어느 곳에 서기보다 먼저 경청하고, 먼저 팔을 펴서 보듬어야 한다. 그 자리는 초라하고 어느 편의 박수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편 손, 기다리며 열린 귀는 누구도 밀어내지 않는다. 불안에 쫓겨 주먹을 쥐는 대신 다양성을 품어 안는 교회, 그리스도 때문에 이웃의 생명을 자라게 하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이 사나운 시대가 오래 기다려온 참된 권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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