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논평] 대한민국은 폭력·테러 수출국이 아닌, 공급망 생태계를 나누는 나라.
- 자언련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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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후 화석연료가 90% 이상 생산되는 하르그섬을 폭력으로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레바논 헤즈볼라 (Hezbollah), 팔레스타인 하마스 (Hamas) & 이슬라믹 자하드(PIJ), 예멘 후티 반군 (Ansar Allah) 등에 폭력과 테러를 수출하고 있다.(구글, AI 개요) 이란과 대한민국은 대비된다. 대한민국은 초연결망사회를 만들고 분업으로 인류의 자산을 공유하고 있다. 자유주의 계약관계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 문화는 이란과 궤를 같이 하면서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계약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 국가와 국가 간에 계약을 한다. 물론 자유인이 계약을 하지, 노예는 계약 당사자가 될 수 없다. 초연결망 사회로 갈수록 계약관계가 더욱 촘촘해지고, 신뢰가 더욱 강화된다. 이란의 시아파 신정국가는 같은 야훼를 신봉하는 나라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경 창세기 9장 “(노아와 계약을 맺으시다) 창세기 9장 1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다. 이것들이 너희의 손에 주어졌다. 3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풀을 주었듯이, 이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준다. 4다만 생명 곧 피가 들어 있는 살코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5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는 어떤 짐승에게나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6사람의 피를 흘린 자
그자도 사람에 의해서 피를 흘려야 하리라.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7너희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땅에 우글거리고 그곳에서 번성하여라.”
8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10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11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14 내가 땅 위로 구름을 모아들일 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15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17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나와 땅 위에 사는 모든 살덩어리들 사이에 내가 세운 계약의 표징이다.”
유엔 헌장에서 공산혁명의 폭력과 테러는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엔은 그걸 지키지 않았고, 미국은 8월 이후 모든 전문기구에 자금을 회수코자 한다. 이란 혁명수비대에 폭력혁명 수출 그리고 폭력과 테러를 멈추라고 한다. 중앙일보 강태화 워싱턴 특파원·김형구·한지혜 기자(07.16), 〈트럼프 “주말까지 협상 안하면 발전소 폭파”…이란 미사일 기지 공습〉, “미군이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주장하는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에 이어 공습을 재개했다. 이란은 중동 내 미군기지는 물론 호르무즈해협을 운항하는 상선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중동을 관할하는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는 15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서 “호르무즈해협에서 상선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이란군의 군사 역량을 추가로 약화하기 위한 새로운 군사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격은 미 동부시간 오전 6시(이란 시간 오후 2시)에 단행됐다. 90분간의 공습 동안 호르무즈해협 입구의 전략 요충지이자 이란 군사 및 미사일 기지가 있는 그레이터툰브섬을 정밀 타격했다고 한다.
전날 오후 4시엔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가 재개됐다. 미 중부사령부는 봉쇄 1시간 전 공습도 재개했으며, 항공모함 2척을 포함한 전함 20척과 군용기 수백 대가 동원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내가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공격은 이어질 것”이라며 이란의 지하 핵 시설이 있는 ‘곡괭이 산’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유 수출의 핵심 거점인 하르그섬에 지상군 투입 가능성에 대해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우리가 그들을 충분히 약화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밑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는 했지만, 이란이 주말까지 협상장에 나오지 않으면 “발전소와 교량을 모두 무너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1945년 이후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북한의 폭력과 테러 그늘에서 살아왔다. 수 많은 시민들이 희생이 되었다. 검찰·법원은 조사만하다 종결한 사건이 한 두건이 아니다. 유명 정신인마저 ‘요즘 세상이 간첩이 어디있어’라고 했다.
폭력과 테러는 계속된다. 부정선거는 계약을 유명무실화하는 문화에서 나온다. 조선일보 양상훈 편집인(07.16), 〈'5·18 피로증'은 민주당이 만든 것〉, 폭력과 태러 앞에서 계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책임 의식도 없다. “민주당은 5·18 숭고한 뜻. 실천하는 정당인가. 정치에 5·18 이용하는 반민주 행태 정당인가. 일반 국민 사이에서. 불거지는 5·18 피로증 민주당 책임이 크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5·18이 이렇게 된 것은 민주당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5·18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5·18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만들고 철저하게 이용했다.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 반대편에 피로증을 느끼는 국민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결국 여기저기서 다양한 형태로 그 피로증이 불거지고 있다고 본다.
민주당은 5·18의 뜻을 계승한다면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과 다를 바 없는 반민주 행태를 보이고 있다.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탄핵 남발과 무리한 입법 폭주로 계엄 사태의 한 단초를 만들었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뒤엔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해 대법관 대폭 증원, 사실상 4심제 도입을 밀어붙였다. 마음에 안 든다고 헌법기관이나 마찬가지인 검찰을 통째로 삭제해 버렸다. 이제는 대통령 사건을 아예 없앤다는 공소취소를 추진해 민주주의의 핵심인 법치를 짓밟으려 한다. 언론도 위협한다. 5·18 정신과 정반대 행동을 하는 민주당이 5·18을 내세워 이용하니 피로증을 느끼는 국민이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다...
5·18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세월호 사고, 핼러윈 참사 등 정치와는 상관 없는 사고를 정치에 노골적으로 이용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추모한다며 “고맙다”는 글까지 썼다. 피로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이 ‘5·18 경찰’ 역할을 하겠다면 답해야 할 문제가 있다. 민주당 운동권 중 상당수는 과거 오랫동안 6·25를 ‘김일성의 남침’으로 보지 않았다. ‘남북 간 잦은 국지 충돌의 확대’라는 한 외국인의 황당한 논리를 숭배했다. 6·25 남침으로 우리 군인과 국민 수십만 명이 직간접으로 죽거나 다치고 몰락했다. 5·18과 비교할 수 없는 피해다. 그 수많은 호국 영령을 모독한 운동권 중 이에 대해 고백하고 사죄한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그 문화는 이란의 혁명수비대의 폭력 수출은 철저한 ‘사적 카르텔’의 문화이다. 안으로 이란 9천만 시민을 불쏘시개로 만들고, 폭력가 테러의 수출까지 한다. 조선일보 사설(07.16), 〈검찰까지 손 떼면 無견제 '향찰' 전국에서 문제 터진다〉, “경찰이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 사건의 증거 은폐에 가담한 혐의로 이 사건 수사팀장을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성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핵심 증거를 고의로 방치해 장씨의 아버지가 이 증거들을 인멸하도록 한 혐의다. 성범죄 혐의를 배제하는 데 “상부 지시가 있었다”는 수사팀장의 주장에 따라 광주 광산경찰서장과 형사과장도 직권남용 혐의로 입건했다.
장씨의 아버지는 전남광주 지역의 현직 경감이라고 한다. 아들 사건을 수사한 광산서 지구대에서 한때 근무했다. 구속된 수사팀장도 3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한 다리만 건너면 지연과 혈연, 학연, 근무연으로 얽히는 전형적인 ‘향찰(鄕察)’이다. 한 수사팀원은 장씨 아버지를 “선배님”이라며 수사 상황을 알려준 혐의로 입건됐다. 지역 경찰의 고질적 폐쇄성이 후진국형 토착 비리 사건을 일으켰다.”
조선일보 A31 하 5단 통광고 뉴데일리 이진광 기자/편집인(07. 16), 〈1923년의 이승만 2026년의 트럼프. 103년 시간차, 놀라울 만큼 닮은 통찰..‘공산주의는 자유의 적’〉, “1923년 우남은 ‘공산당의 당부당’이란 글을 발표했다. 전 세계 지식인 사회가 공산주의 유행에 빠져들던 때였다. 미국은 적색공포(Red Scare)에 시달졌다. ”제1차 적색공포 (1917~1920년)배경: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노동자 파업입니다. 전개: 미국 사회에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가 퍼질 것이라는 불안이 극에 달했습니다. 결과: 정부는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수천 명의 이민자를 체포하고 강제로 추방했습니다.(나무위키; 구글 AI 개요)
현재 대한민국은 초연결사회의 선도국가이다. 폭력과 태러와는 전혀 다른 문화이다. 나라경제가 위태위태하다. 동아일보 송유근 기자(07.16), 〈[속보]코스피 급락에 매도 사이드카 발동〉, “유가증권(코스피) 지수가 16일 4% 급락하며 코스피 시장에 매도사이드카(프로그램매매 매도호가 일시효력 정지)가 발동됐다. 코스피는 다시 70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오전 9시 10분 26초를 기해 유가증권시장에 매도사이드카가 발동됐다고 공시했다. 매도 사이드카는 프로그램매도를 5분간 멈춰 변동성을 낮추는 장치다. 코스피200 선물이 5%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될 때 발동된다. 코스피는 이날 전날 대비 4.45% 하락한 6960.50에 개장했다.
코스피는 전날 6% 넘게 폭등하며 단숨에 ‘7000피’를 회복하고 매수 사이드카를 발동시켰으나 단 하루 만에 상승분을 대거 반납하며 7000선 아래로 밀려났다.”
한편 자본이 필요한 시기에 엉뚱하게 자본을 허비했다. 2016년 대한민국의 국가채무(D1)는 627조 1000억 원이었다. 이는 당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38.3% 수준이었다. 공무원 및 군인의 연금 충당부채까지 포함한 발생주의 총부채는 1433조 1000억 원이었다. 2016년은 현재와는 딴판이다. “미래에 지급해야 할 공대한민국의 국가 채무는 약 1,300조 원을 돌파했으며, 연금 충당부채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국가 총부채는 6,5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48%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부채 총액은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구글, AI 개요)
폭력과 테러 문화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문화가 바뀌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1987년 이후 86 운동권 세력(종북·친중세력)이 단절시켰던 ‘근대화’ 문화가 대기업의 노력으로 다시 복원이 되면서 ‘세계의 공장’ 위치를 회복하고 있다. AI 반도체가 앞장선 이 문화는 ‘근대화’ 문화를 관통한다.
그 문화는 계약의 문화이다. 부정선거는 그 단적 증거로 표출되었다. 중국에 갔던 소부장 공장이 다시 돌아오거나, 그 후손들이 철저한 분업 정신으로 강소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그 때의 사상적 맥락은 헤겔의 철학과 유사하다. 칸트·헤겔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자유주의 사고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 발전은 자유주의에 근거한다. 공장 노동자는 기계와 미세한 감각을 공유하고, 또한 노동자 개인은 동료 엔지니어의 미세한 감각을 습수하여, 비교함으로 타인의 감각을 복제〔otherness〕하고 자신의 자의식은 높은 단계로 승화시킨다. 자신의 자의식에 타인의 자의식을 입력시킴으로써 사고의 융합이 일어난다. 그 감각은 카이스트(KAIST, 1971년 설립)와 같은 연구기관에서 과학적·분석적으로 계속 업그레이드시켜준다.
그 과정에서 100년 앞을 내다본 박정희 대통령은 정밀 기계산업을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1967.01.09.설림), 전자산업은 금오공고(1972. 11 설립)에서 불을 지핀다. 어린 나이에 기술을 몸에 체화하는 것이다. 이 때 타율이 아닌, 인센티브의 자유에 기초한다.
현재는 어떤가? 중앙일보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2026.07.16.), 〈세금을 휘두르면 민주주의가 망가진다〉, “세금의 본질은 얼마냐라는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어떤 종류의 세금을 왜 내고 누가 내자고 합의가 되어야 액수를 따질 수 있는 것이지, 합의 없이 돈만 빼앗아가면 국가가 아니라 뒷골목 건달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금의 기본 원칙인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원리이다. 착한 납세자인 한국인들은 아직도 초등학교 때 배운 것을 되묻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왜 세금을 내야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초등학교 때 배운대로 국민의 의무 아니냐고 반문한다. 맞다. 헌법 제38조에 나와있는 국민의 의무이다. 질문을 이어가보자. “그럼 혹시 납세가 왜 국민의 의무인지 설명을 들으셨나요?” 묵묵부답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의무라니까 낸다는 착한 납세자들에게 질문을 이어간다. “그럼 얼마까지 의무인가요? 선생님 재산의 절반 혹은 70%를 내라고 해도 의무니까 내실 건가요?” 침묵이 이어진다. 마지막 질문. “남들은 안 내고 선생님한테만 내라고 해도 의무니까 내실 건가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는 반응이다. 살면서 세금이 부담스러울 때야 누구나 있겠지만 남들 다 내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태 나만 내고 있었다면?
이 대화에서 예시로 든 것들은 모두 현실 속에 존재하는 세금들이다. 소득세 최고세율 49.5%이고 상속세 최고 세율도 50%였다가 2024년에 40%로 바뀌었다. 둘 다 OECD 최고 수준이다. 양도세를 가장 많이 내게 되는 경우 세율은 70%로 기네스 세계기록 감이다. 그러니 “절반 혹은 70%”라는 세율은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다. 남들은 안 내는데 나만 내는 세금도 널렸다. 근로소득 면세자는 약 33%로 OECD 평균의 두 배나 된다. 근로소득자 3명중 1명은 한 푼도 안 내는 세금이고, 실제로는 상위 10%가 소득세의 거의 대부분을 감당한다. 그러니 한국에는 왜 내는지 모르는 세금을 소득의 절반 이상 내고, 남들은 안 내도 나만 내는 순진한 납세자들이 넘쳐난다는 얘기다...
국가가 세금을 정치화해서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시점은 초고령사회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조세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신중하게 준비해야 할 때이다. 가뜩이나 극단적으로 정치화 되어버린 세금을 더 누더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세금을 응징하는 방법은 유권자이기도 한 납세자의 각성이다. 세금을 왜 내는지, 얼마를 내는지, 왜 내가 내는지 하나하나 따지고 요구해야 한다. 착한 납세자가 아니라 강한 납세자가 필요하다.”
한편 선진 기계는 차관, 베트남참전, 독일광부·간호사, 중동 근로자 등을 통해 조달한 돈으로 포철과 같이, 국가 차원에서 장만해 줬다. 이는 ‘톨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의 저서 『제국 독일과 산업 혁명(Imperial Germany and the Industrial Revolution)』(1915년 출간)은 후발주자인 독일이 전제정치와 군국주의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급속도로 현대 산업과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 분석한 명저입니다.’(구글, AI 요약)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새마을운동(1970년 4월 청도에서 시작, 근면·자조·협동 정신)은 타자의 미세한 감각을 자신의 뇌속에 입력시켜, 타자의 감각으로 자신의 사고와 융합한다. 그 때 객관화가 가능할뿐만 아니라, 외면화와 객관화가 쉽게 형성이 된다.
그 아이디어는 헤겔 철학에 원형을 찾을 수 있다. Self consciousness has equally superseded this externalization and objectivity too, and taken it back into itself so that it is in communion with itself in its otherness as such.(Hegel, 1952/1977: 479)
“제시하신 문장은 독일 관념론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W.F. Hegel)의 저작 『정신현상학(Phenomenology of Spirit)』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주관적 의식이 대상(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핵심 문구의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자기의식은 마찬가지로 이러한 외재화와 객관성마저도 지양하고, 그것을 다시 자기 내부로 거두어들여 그 자체로서 타자성 속에서도 자기 자신과 온전히 교감하고 있다."(구글, AI 개요)
AI 공급망 생태계의 문화가 또 다른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폭력과 테러의 문화로 흡수가 될까? 잘 못하면 계약의 길을 포기하고, 노예의 길로 간다. 소는 되새김질하면서 계속 영양을 보충한다. 중앙일보 최문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좌교수(07.16), 〈초연결 사회의 외로움, 국가의 역할을 묻다〉, 이재명 정권은 폭력·테러의 문화로 길을 잘못 들어온 것이다. ”지금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디지털로 더 촘촘히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망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2025년 기준 성인 스마트폰 사용률은 99%나 되고, 사물인터넷(IoT)과 공공 와이파이망이 전국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었다. 5G를 넘어 6G를 향해 달려가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세상과 단절되지 않는다. 연결은 늘었지만 깊이는 얕아져. AI와의 소통, 고립 심화시킬 우려. 연결의 양 아닌 방향·깊이 따져야. 그런데 왜 우리는 이토록 외로운가...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이 혼자 감당해야 할 일시적 감정이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할 사회적 위기가 된 것이다. 이토록 촘촘히 연결된 사회에서 왜 우리는 더 깊이 고립되고 있는가...
문제의 본질은 연결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연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그 깊이는 오히려 얕아졌다. 인스턴트 음식이 배를 채우면 정작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공간이 사라지는 것처럼 피상적이고 즉각적인 디지털 연결은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할 에너지와 의지를 잠식한다. 결핍을 느낀 사람들은 그 공백을 다시 스크린과 알고리즘으로 채우고, 그 악순환은 반복된다. 깊고 의미 있는 관계는 책임과 기다림, 시간과 참을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즉각적 만족에 익숙해진 우리의 뇌는 그 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초연결 사회에 인공지능(AI)이 더해지면서 생성형 AI는 매우 사적인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하는 데까지 빠르게 활용되고 있다. 많은 청소년과 성인이 챗봇과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부는 인간보다 AI와의 대화가 더 편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AI의 등장이 초연결 사회의 외로움이라는 역설을 풀어줄 수 있을까...
최근 AI 업계에서는 ‘워크 슬롭(work slop)’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업무 수행에서 AI가 생산하는 결과물의 양은 많지만, 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AI를 활용하면 업무 효율이 높아져 짧은 시간에 업무를 완성할 거라 기대하지만, 오히려 다량의 품질 낮은 생성물을 검토하고 수정하느라 시간이 더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든 응답하고 공감하는 AI와의 상호작용은 양적으로 풍부해 보이지만 책임과 기다림, 양보와 이해가 결여된 ‘관계 슬롭(relation slop)’이 될 위험은 없는가. 대량의 품질 낮은 상호작용이 마치 외로움을 낮춰주는 것 같아 시간을 많이 쓰지만, 결국 의미 있는 소통을 찾지 못한 마음은 더 분주해지고 외로움은 깊어지지 않을까. 아울러 플랫폼 비즈니스가 발달할수록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의식주를 해결하며 고립이 가능해지는 것처럼 생성형 AI와의 소통은 인간관계를 맺을 동기를 서서히 약화시켜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고립을 심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AI가 외로움을 얼마나 줄이는지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인간관계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함께 살펴야 한다. 기술은 인간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연결이 넘치는 시대에 사회 전체의 외로움이 더 심화한다면, 우리는 기술을 잘못된 방향으로 설계해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연결의 속도와 양이 아니라 연결의 방향과 깊이를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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