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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맹기 논평] 왜 영웅인가?

종교만큼 인간에게 ‘행복’과 ‘즐거움’(기쁨)을 선사하는 것이 없다. 이세상 넘어 인간의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위안 그리고 죽음을 초연할 수 있는 인간은 언제든 삶의 위안을 얻는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웃고, 인간사인데 뭐라고 종교인은 낙천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성탄의 즐거움도 그런 차원에서 값진 것이다. 그러나 성탄의 ‘즐거움’은 절제와 좋은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온다. 방탕한 사람에게 성탄의 즐거움은 아마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종교인에게 극단적 선택은 익숙치 않다. 반면 방탕한 나쁜 습관은 종교적 심성을 갖지 않으면 절대로 고쳐질 수 없고, 죽을 때까지 가져갈 것이다. 그게 사회로 이전된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 사회는 ‘즐거움’의 곳이 아니라, 폭력가 테러가 항상 있는 곳이 된다. 그걸 막는 것이 종교이다. 그 때 종교는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그 사회는 이성과 합리성이 작동하고, 예측 가능하고, 신뢰가 싹트고, 공동체가 살아난다. ‘영웅’의 영화는 우리에게 그런 의미에서 종교인의 삶의 지표를 제공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개인과 공동체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문재인 청와대가 쓸고간 지난 6년 간은 이성과 합리성의 마비상태로 교수신문에서 ‘과이불개’(과오가 있어도 개선하지 않는다.)가 꼽힐 정도이다. 선악의 구분이 되지 않으니, 좋은 지혜가 나올 수가 없다.


종교가 극단적으로 간다. 천지일보 손지하 기자(2022.12.25.) 〈아프간 탈레반, 여성 대학 교육 이어 자원봉사도 금지〉, 정치와 종교를 일치 시키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24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들에 따르면 탈레반 정부는 경제부 장관 명의의 서한에서 이 같은 명령을 통보했다. 그러면서 탈레반 정부는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여성 자원봉사자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최근 탈레반 정부는 대학교에서 여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금지하면서 ‘복장불량’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탈레반 통치자들은 전국 여성들에게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사립 및 공립 대학에 다니는 것을 즉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언론인들은 이날 카불 4대 대학 밖에서 탈레반 군대를 목격했다. 군대는 일부 여성이 학교 내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일부 여성은 들어가서 작업을 마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아울러 사진 촬영을 막고 시위 차단에 나섰다.”


이젠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면서 엉뚱한 짓을 일삼는다. 조선일보 홍다영 기자(12.25), 〈 ‘〈이란 反정부 시위로 43명 사형 위기에 처해’〉, “‘히잡 의문사 사건’으로 촉발된 이란 반(反)정부 시위대 43명이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미국 CNN이 2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 9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사망하며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자 이란 당국은 최소 2명을 처형하고 이 중 1명을 공개적으로 사형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형수에는 축구선수 아미르 나스르 아자다니도 포함됐다. 나스르 아자다니는 지난달 16일 이스파한에서 시위하던 중 민병대원을 포함한 보안군 3명을 살해하는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국영 IRNA 통신 등에 따르면 나스르 아자다니의 지인은 그가 교수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당국 관계자에게 들었다고 한다. 아자다니의 지지자들은 사형 집행대가 설치된 이스파한 광장에 매일 찾아가 사형 집행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북한에는 아예 정치가 종교인 행사를 하면서, 인권유린이 지난 74년 간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한다.’ 종교인은 고도로 절제가 필요한 대목이다.


지금 광화문 집회가 가관이다. 동아일보 사설(12.24), 〈‘위헌 누더기’ 집시법… 장소 아닌 ‘폭력·소음’이 금지 기준 돼야〉, 문재인 양산 사저 소음을 빌미로 文 씨의 특별법을 만들어줬다. 그는 2016년 촛불 때 시도 때도 없이 하도록 하고, 자신이 괴로우니, 법을 고쳐 방탄막을 설치했다. 법은 약자를 위해 만드는 것인데, 자신을 위해 법을 만들도록했다. 이성과 합리성을 벗어난다. 국회는 부역자 역할을 한 것이다.


그 방법을 지금 광화문에서 종교인이 그대로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한 현행 ‘집시법’ 11조가 헌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그제 내렸다. 헌재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명하고자 할 때 대통령 관저 인근은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장소’라며 ‘관저 인근 집회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의 핵심적인 부분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국회에 2024년 5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목적이 어떻든 종교부터 이성과 합리성을 잃으니까 사회는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를 우습게 본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 100% 당원 투표로 결정이 났다. 종교가 깊숙이 개입하는 역사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종교가 선악이 구분을 명료하게 하는 빚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이 그렇다고, 여당이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신문 이범수 기자(12.23), 〈이재명, 연일 尹 겨냥해 ‘망나니 칼춤 좌시 않을 것’〉, 경향신문 손진식 기자(12.24), 〈이재명 ‘야당 탄압’ 반발에 한동훈 ‘수사받는 정치인이 자주하는 과장발언’〉, 정치인이 선악의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건설적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2023년 예산이 그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 서울신문 이영준 기자(12.24), 〈내년 예산 638.7조 국회 통과… 선진화법 이후 역대 최장 지각 처리〉, 금액은 엄청난데 국가 방향이 어디인지 분간을 할 수 없다. 안에는 갈등이고, 그 갈등을 돈으로 처리코자 한다. 진정한 종교의 정신은 죽어있는 것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이다. 국가부채는 전체 5000조 원이 넘어간다. 절제를 읽은 것이다. 종교도 아예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다. 좋은 습관을 길러주는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내년 예산안이 법정 처리 기한(12월 2일)을 3주 넘긴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24일 본회의를 열고 총지출 기준 638조 7276억원 규모의 2023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최종 수정안은 정부안 639조 419억원에서 3142억원이 줄었다. 증액 규모는 약 3조 9000억원, 감액 규모는 약 4조 2000억원이었다.”


국민일보 사설(12.24), 〈무능한 정치가 만들어낸 ‘어정쩡 예산’〉, “오랜 진통 끝에 여야가 23일 합의 처리한 내년도 예산안은 그 색깔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민간 경제의 활력을 키우려는 윤석열정부의 구상은 상당 부분 후퇴했고, 재정 위주의 경제를 운용하던 문재인정부의 관행이 거대 야당에 의해 끼어들었다. 당초 정부안은 기업 활동과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3% 포인트 낮추는 거였는데, 이를 부자감세로 규정한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부닥쳐 과세표준 구간별로 1% 포인트씩 인하하는 선에서 그쳤다. 반면 지역화폐 예산 3500억원, 공공임대주택 예산 6600억원 등 정부안에 없던 재정 지출 항목이 민주당의 요구액을 절반쯤 깎은 채로 새롭게 반영됐다. 여야 입장이 갈린 쟁점 항목마다 이렇게 중간선에서 타협을 택한 탓에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예산이 됐다. 민간의 활력을 기대하자니 뭔가 부족해 보이고, 재정의 역할에 의지하자니 충분치 못해 보인다. 현 정부와 전 정부의 ‘기묘한 동거’라고 불러야 할 예산을 갖고 경제 위기가 한층 심각해질 내년 나라 살림을 꾸려야 하는 상황이다.”


선악의 판단이 흐리니, 좋은 지혜가 나올 이유가 없다. 크리스마스 ‘즐거움’은 세상에서 살아지는 느낌이다. 예산에 숫자만 늘어났다. 그 만큼 국민이 갚아야 할 돈이 늘어난 것이다. 공직에 팽해있는 책임의식 부재, 즉 대통령실은 국회 탓고, 국회는 행정부 탓이다. 생기가 없는 무기력한 사회가 된 것이다. 금식과 금욕을 반복해온 기독교인만으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앞장설 필요가 있게 된다.


안중근 열풍이 분다. 종교인의 빛과 소금이 이런 것이 아니었나?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은 갑신정변의 주역 개화파와 같은 경향을 띠고 있었다. 그는 종교인(가톨릭 신자)로서, 이등박문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러시아에 대항하여, 한국 일본 중국이 힘을 합친 동화평화론을 거부한데 대한 반감을 가졌다. 安 의사는 현재 이야기하는 ‘우리민족끼지’, ‘문재인식 평화’와는 전혀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 말하면 오히려 ‘친일론자’이다. 安 의사는 자유와 책임에 철저했다. 그 실체는 ‘열린 민족주의’이며, 제헌헌법 전문의 정신과 일치한다. 그 맥락은 1919년 국제연맹을 가능케 한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맥을 같이 한다. 윤제균 감독을 종교인으로서, 안중근의 역사의식을 다시 부각시킨 것이다. 그게 우리 사회에 살아가는 삶의 지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조선일보 남정미 기자(12.24), 〈뮤지컬, 소설, 영화까지 세밑에 부는 안중근 열풍〉,

“21일 오전 10시. 서울 신촌의 한 극장에서 울지 않은 관객은 없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항소하지 말고 죽으라는 편지를 보낸 어머니. 그 어머니가 지어 보낸 수의를 입고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아들을 보고 눈물 흘리지 않을 사람 있을까. 영화 ‘영웅’은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이른바 쌍천만 감독이 된 윤제균이 8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그는 2012년 배우 정성화가 출연한 동명의 뮤지컬 ‘영웅’을 보고 거의 오열하다시피 울었다고 한다. 이를 꼭 영화로 옮기겠다는 약속을 10년 만에 지켰다. 개봉 첫날에만 10만명의 관객이 몰렸다.

...위인 서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감동을 준다. 김교석 문화평론가는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불황이고, 사회는 혼란스럽다. 경제 위기를 겪는 아르헨티나에서 메시가 축구로 국민을 위로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선 안중근 의사가 지금 그런 역할을 해주는 셈’이라며 ‘최근 전세계적으로 K-콘텐츠가 널리 퍼지면서, 과거엔 ‘애국 마케팅'이라고 외면 받던 영웅 서사에 대해 젊은 세대의 호감과 자부심도 커졌다’고 했다. 잘 안다고 생각한 인물이기에, 미처 몰랐던 그의 고뇌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때 우리는 더 몰입한다. 영화에선 이 역할을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한다. 윤제균 감독이 영화화를 결심한 가장 큰 계기이자, 이 영화를 ‘어머니의 영화’라고 표현한 이유다. 영화 ‘영웅’을 제작한 CJENM 윤인호 팀장은 ‘영화 속 안중근은 그간 우리가 위인전을 통해 보고 배운 ‘천하무적 히어로’가 아닌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 아버지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하지만, 인간적인 용기를 가지고 자신이 목표한 일에 한 발짝씩 나아간다. 이 용기를 통해 힘든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도 에너지를 얻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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