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논평] 상대 혐오를 지지동력 삼는 정치 부족주의.
- 자언련

- 2024년 1월 4일
- 6분 분량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유력한 상대를 제거하는데 주력’을 하는 문화는 문제가 있다. 현장의 합리성을 결한 문화는 상징의 이미지 정치가 가능하고, 관계성으로 엮다 보면 진실이 쉽게 왜곡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 문화 현상이 이재명 테러 현상에서 나타난다. 이미지 좌파문화현상은 너무 복잡하고, 애매하다. 그러나 이미지가 아닌, 진실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간단 명료하고, 아니 그렇게 복잡할 필요가 없다. 상징조작과 폭력과 테러의 시대! 이 위중한 시기에 ‘대중문화 콘텐츠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란 토론회는 그 현상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가짜’에 휘둘리지 않는 현실 직시 콘텐츠 전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중앙일보 정용환 기자(2024.01,03), 〈“흉기는 나무젓가락”…증오 퍼나르는 음모론〉, “대낮에 공개된 장소에서 제1야당 대표가 괴한에게 흉기로 피습당한 사건을 놓고 온라인에선 ‘자작극’이라는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극성을 부렸다. 여론을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행태이자 극단적 정치 문화가 낳은 병리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온라인을 달군 건 ‘나무젓가락 흉기설’이었다. 직장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인 ‘블라인드’에서 모 회사 직원은 “이재명(대표) 영상을 슬로(느린 속도)로 보면 민주당원이 왼손에 칼, 오른손에 종이로 만 나무젓가락을 들고 오른손으로 찌른다”며 “자작극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회사 직원도 “범인의 오른손에는 칼이 아닌 무언가 짧은 물건이 들려 있고 나무젓가락으로 추정된다”며 음모론에 동조했다. 범행에 쓰인 흉기가 이 대표 팬클럽이 사용하는 깃발 모양 응원 도구인 ‘잼잼 응원봉’의 깃대 부분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네티즌은 ‘디씨인사이드’ 갤러리에 올린 ‘아니 누가 자작극이래’라는 글에 응원 도구 사진을 올리며 “그냥 범행 도구가 ‘잼잼 응원봉’이라는데 왜 (민주당이) 영상 다 내리고 모자이크하고 고소·고발·협박까지 하느냐”고 적었다.”
이젠 관계성으로 엮어낸다. 이재명 테러에 박근혜 테러가 또 등장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01.03)에서 〈2006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이었던 저 유정복이 “대전은요?”의 진실을 밝힙니다.〉, “1. 금일 윤여준 전 장관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6년 서울 신촌에서 피습을 당한 뒤 병원에서 하신 ‘대전은요?’라는 말이 사실은 참모들이 준비했던 말이었다”라고 한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므로 바로 잡습니다...윤 전 장관의 말씀은 팩트가 다 틀리므로 잠시 착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인터뷰는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기에 정정 인터뷰를 요청합니다...3. 당시 상황을 정확히 밝히면,-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는 2006년 5월 20일 오후 7시 15분에 현대백화점 신촌점에서 커터칼로 테러를 당하셨습니다. 당시 상처는 길이 11센티미터, 깊이 1~3센티미터로 3시간 30분 동안 60여 바늘을 꿰맨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 다음날(5월 21일), 한나라당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모두가 격앙되어 강력 대응을 주장했는데,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제가 수술에서 깨어난 박근혜 대표에서 그 사실을 보고하자 첫 마디가 “오버하지 말라고 하세요” 였습니다.
- 당시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 기간이었으므로, 그 다음날인 5월 22일 병실에 들어가 현재 선거상황에 대해 보고드렸더니 첫 말씀이 “대전은요?” 였습니다.
- 즉, “대전은요?”라는 말씀은 수술에서 깨어나신 후 첫 말씀이 아니라, 이틀 뒤 선거상황을 보고했을 때 나온 첫 말씀이었으므로 윤여준 장관이 얘기한 상황과는 전혀 다릅니다.”
현장에 충실하지 않은 상징 조작에 대한 논의가 나온다. 스카이데일리 임유이 기자(01.03), 〈대중문화 장악한 좌파 권력의 실체를 파헤친다〉,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스카이데일리 주최하고 고성국TV·프리덤뉴스·한국근현대사연구회·오이박사가 공동으로 주관한 이날 행사는 고성국 정치평론가가 좌장으로, 주동식 지역평등시민대표·김규나 소설가·허은도 서울락스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가 패널로 참석했다. 그 주제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었다.
“대중문화 콘텐츠가 우리 삶 속으로 이토록 깊이 파고든 적이 있을까. 스마트폰과 유튜브·OTT의 보급은 문화콘텐츠로의 접근 경로를 더욱 단순화시켰다. 이 시점에서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제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주동식 대표는 좌파가 국내 대중문화의 헤게모니를 쥐게 된 역사를 짚어 내려갔다. 그에 의하면 1980년대 좌파가 정치적 승리를 거두면서 대한민국은 사실상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우파가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운동권은 제도권 진출을 포기하고 풀뿌리 운동으로 우회하였다. 한국 사회의 좌파 시민단체가 만들어진 게 1987년이다. 이때부터 이들은 대중에 침투하여 우파가 쥐고 있던 권력을 나누어 갖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좌파는 표면적으로 피해자·약자 코스프레로 일관하였고 그 결과 책임 없는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이들은 피상성·단발성·휘발성을 특징으로 하는 단순 이미지 전략을 구사하였다. 주 대표는 대표적인 예로 미군의 독극물 방류를 모티브로 하는 영화 ‘괴물’을 들었다. 이 영화는 오락영화를 표방하지만 바닥에 반미·반서방 정서가 깔려 있다.
영화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한편 “허은도 감독은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영화진흥공사를 설립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출발한 진흥공사는 김대중정권이 들어서면서 영화진흥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는 독립영화협회 등 각종 단체를 대상으로 특혜성 지원을 시작했다. “파시스트 무솔리니정권은 “영화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라는 슬로건으로 시네시타필름을 설립하였으며 스탈린 시대의 모스필름 그리고 히틀러·모택동·북한에 이르기까지 전체주의 국가들은 영화를 대중 선전 선동에 이용했습니다. 허 감독은 대한민국 좌파 정부가 영화를 이용해 문화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사례를 들려주었다. 김대중정권이 출발시킨 영진위는 좌파 성향 영화인을 양성하고 편파적 지원을 했다. 이들의 행태는 노무현정권에 이르도록 무차별적으로 진행됐다. 이명박정권과 박근혜정권이 들어서면서 변질된 영화계를 바로 잡아 보고자 우파 성향의 영진위원장을 임명했지만 이미 좌파 쪽으로 영화단체들의 공격에 임기를 제대로 채운 영진위원장은 한 명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들의 이념에 맞지 않는 영화들은 철저하게 배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허 감독은 최근 1200만 관객을 달성한 ‘서울의 봄’에 대해서도 강력한 비판을 이어갔다. 영화는 허구의 산물임에도 마지막 엔딩 씬에는 실제 사진을 삽입하고 거사에 참여했던 하나회 장군들의 그 후 행적을 자막으로 보여주어 이 영화가 실화인 것처럼 관객을 현혹시켰다는 것이다. 그 외에 허 감독은 영화계의 교묘한 언론플레이·진실 왜곡 외에 좌파 영화인의 숙주 노릇을 하는 국내 3대 국제영화제의 행태를 비판했다.”
한편 소설가 김규나는 ‘한국 문단, 한국 문학의 현실’ 내용으로 한국 문단의 계보는 1960년 최인훈이 ‘광장’을 발표한 이래 1978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거쳐 1990년대 여성 작가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본격 좌파 문학이 등장하면서 인간 윤리와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김 작가는 ‘작가, 사회에 미치는 힘’과 관련해 ‘북남통일’ ‘태백산맥’ 등의 소설로 친북 정서를 일반화한 조정래 작가와 “김일성은 을지문덕·세종대왕보다도 위대하다”는 언설로 대중을 현혹한 황석영 작가를 조명했다. 또한 누적 판매량 1000만 권을 자랑하는 공지영 작가가 “탄핵 촛불은 단군 이래 최대 정의”라는 선동적인 언사를 남발하고, 김용택 시인이 “촛불집회는 전 세계 유례없는 시민 혁명”이라며 공공연히 촛불을 정당화한 것을 짚고 넘어갔다. 그 외에 ‘작가회의’와 민족문제연구소가 42인의 친일작가를 선정하고, 친일인명사전을 제작한 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문화콘텐츠는 다른 소비재와 달라서 소비자의 정서에 호소하는 특징이 있다. 감동과 자극이라는 양날의 검으로 무장한 종북 좌파 대중문화 콘텐츠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그 첫걸음을 떼는 시간이었다.”
픽션에 상징물을 들이 대면 가짜뉴스의 온상이 된다. 그 혼란된 상황이 국내 현실이다. 김규나 작가는 자신의 발제 내용에서 상징조작 의미과 그 의도의 계보를 언급했다.
“‘조지 오웰, 글쓰는 이유’는 “순진한 이기심- 지적 허영심, 주목받고 싶은 욕망, 보상심리. 미학적 열정-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은 열망. 역사적 충동-사실과 진실의 탐구, 기록, 보존 욕구. 정치적 목적-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는 의도.”
한국문단, 한국 문학-사르트르 ‘참여 문학’에서 “‘문학은 사회변혁에 이바지해야 한다.’ 모리스 메를로 뽕띠의 진보적 폭력 계승 발전. 공산주의가 유일한 이상 세계 건설 운동.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자는 개〔犬〕다! ‘6·25는 미국 사주, 남한 도발에 속은 북한의 남침.’”
문단 최고 권력, ‘창비’ 백낙청-문단 최고 권력 ‘창비’ 세계문학 발간사에서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개성이 매몰되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물질만능과 승자독식을 강요하는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현대 사회는 황폐해지고 삶의 질은 크게 훼손되었다. 경제성장만이 최고의 선으로 인정되고 상업주의에 물든 문화소비가 삶을 지배할수록 문학은 점점 더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삶의 본질을 성찰하는 문화의 자리가 위축되는 세계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할 것이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 (2012년)
‘모리스 뽕띠의 진보적 폭력 계승 발전’의 폭력과 테러의 정당성 확보의 논리는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저서 ‘메를로 뽕띠와 애매성의 철학’에서 그 실체를 밝힌다. 원래 관계성은 ‘애매’하기 마련이다. ‘애매성’에 줄을 타고 상징조작을 하게 된다. 그 안에 새로운 콘텐츠를 담아내고, 혁명으로 이끈다. 즉, 그 상징조작으로 기존 사회를 붕괴시킨다. 때때로, 아니 아주 빈번히 폭력과 테러의 방법이 필요케 된다. 뽕띠의 논리는 “자유는 이 특전적인 스타일을 무시하고 운위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선택하는 자유는 내가 그동안 살아온 나의 과거의 전통과 또 나의 선택과 관계없이 나에게 스며든 세계의 성격과 분리되어서 논의될 수 없고, 이것들이 은연중에 나의 자유선택의 방향과 의미를 결정하지는 못하고, 적어도 어떤 권유나 간청의 속삭임을 계속 쉬지 않고 행하고 있다...자유는 순수한 의식의 발로가 아니고 이미 세계와의 매개된 잡종의 상태다. 자연환경과 사회환경 그리고 역사의 전통이 이미 나의 자유스런 기투(企投)에 소리없이 매개되었다. 좌우간 자유는 순수의식의 소산은 아니다. 자유는 몸에 붙은 성격에 관여하는 주체성의 선택이요, 다양한 차원을 지닌 문화세계에 참여해서 살아왔던 세상 사람들의 애매한 기반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자유는 분명히 나의 결정이고 나의 결심이지만, 그것의 기반은 익명적인 장(場)으로서 인격적 주체 이전의 바탕 위에 서 있다.”(P.261)
대한민국 사회는 지금 상징조작으로 폭력과 테러 사회를 만들어 이상사회로 가고자 한다. 그 사회현상은 상징조직으로 이뤄지지만, 적확하게 표현하면 해방 이후와 흡사하다고 한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01.04), 〈“상대 혐오를 지지동력 삼는 정치 부족주의 심각… 해방정국 닮아”〉, 해방정국 연구한 정치학자,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해방 정국을 연구해 온 정치학자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에게 의견을 들었다. 심 교수는 한국정치학회장과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지냈으며 ‘해방 정국의 정치이념과 노선’ 등 저서를 냈다. “-지금 정치 상황이 ‘해방 정국을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 현안을 놓고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포용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즉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식으로 상대를 배제하고 제거하려는 행태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유력한 상대를 제거하는 데 주력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정국 당시 발생한 테러는 극단적인 정치를 반영한 것인가. “상대 진영의 유력 정치인을 제거하는 것이 정권 장악의 첩경이라고 생각한 광신적 지지자들이 테러를 일으켰다. 이는 자신감 결여 때문이기도 하다. 라이벌을 제거하지 않고는 정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했기에 테러가 빈발했다고 할 수 있다.” -당대 정치인들이 테러를 부추겼다고 볼 수 있나. ‘당시 정치인들이 직접 테러를 사주한 것은 아니더라도 동기 부여를 했다고는 할 수 있다. 해방 정국의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한편으로는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정치권과 유사 언론이 디지털 미디어 등을 이용해 타 집단에 대한 혐오를 지지 동원의 메커니즘으로 사용한다. 광신적 지지자들은 이렇게 디지털 정치적 부족주의를 강화하면서 상대 정치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강도를 키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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